당신에게 dear you, 2024
01 . <i-i>, 목화천, 8채널 오디오루프, 14’ 8”, 가변설치
02. <가장자리 the edges>, 목화천에 목화실 자수, 청진기, 11채널 오디오루프, 가변시간, 가변설치
@임시공간: 인천
Photos by 고정균
포구 끝에서 눈부신 흰 빛을 보았던 한 시인의 고백처럼, 저 먼 등대에 의지하여 바다를 응시한 적이 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짙게 깔린 그 밤으로부터. 떠남과 도착이 공존하는 항구에서 항해의 종착을 꿈꿨을 난파된 배에 대해 생각했다.
지평선 끝에 도달한 고달픈 눈동자는 맹점의 상태로 바다를 응시한다. 시선의 끝에 도달한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바다로 추락한 별들의 죽음에 빗대어 태어나고 죽어가는 유한한 삶에 대해 생각한다. 가끔 살아있다는 것과 죽어있다는 것의 사이를 분간하기 어렵다. 일종의 기시감은 과거의 장면 자리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나는 그것이 이미 사라지고 없어진 것임을 알고 있다.
죽고 사는 문제 말고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사의 고비를 빌어주는 마음이 전부가 아니면 무엇이 전부란 말인가. 치유할 수 없는 재난*이 삶을 덮친 후에야 죽음에 따른 자리를 알아차릴 수 있단 말인가. 고통에 따른 글쓰기가 아무런 증명과 공허를 이기지 못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것에 대해 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죽음이 우리 안에 보존되어 있다는 것뿐이다.
유은의 이번 개인전 ⟪당신에게 dear, you⟫는 배를 잃은 포구의 자리에서 시작한다. 안산과 목포, 진도, 그리고 인천 바닷가에 가닿은 심상을 글로 담았고 심연으로 이어지는 세이렌의 소리를 드러낸다. 신화에서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지만, 귀를 닫은 자들에게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세이렌들은 조난 당한 자를 찾기 위해 고동을 울린다
전시장에는 세이렌의 몸짓으로 생성된 울림이 가득하다. 세이렌의 소리를 들은 자는 바다의 심연으로 미끄러진다. 심연의 세계는 어둠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공명하는 빛은 완전한 어둠을 만들 순 없다. 소리 없는 아우성은 침묵을 동반했을 때 드러나는 법이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공허에는 반드시 어떠한 울림을 내포한다. 신화 속, 세기의 별들과 같은 이야기에는 생사의 필연성, 끌림과 두려움이 함께 얽혀있다. 이것은 아직 한 번도 쓰여지지 않은 서문을 쓰게 한다.
지금 여기, 전시를 여는 서문(誓文)이 당신을 기다린다. 서문은 물기에 젖어 끝말을 잃는다. 당신에게 건네는 이 글은 일종의 편지와도 같다. 물기를 머금은 서문의 독백은 ‘당신에게’로 향해있다. 당신이 잃어버린 말의 자리를 찾고자 서문(署門)의 방향을 수소문한다. 하지만, 그 행방을 아는 이를 찾기는 어렵다. 안부를 묻는 몇 편의 편지는 응답자의 부재로 끝내 반송되고 만다. 수신과 발신의 어긋남 속에서 기다림이 주는 통증은 장소의 흔적을 고정시킨다.
비를 맞으며 바닷가 마을을 거닌다. 글을 쓰기 위해 종이를 꺼내지만, 젖어버린 종이는 끝내 쓰고 싶은 말을 쓰지 못하게 한다. 기억하기 위해 머릿속에 문장을 되새긴다. 문장을 새기기 위한 활자는 파동을 일으키고 음률을 형성한다. 글자와 글자 사이가 벌어지며 공백을 만든다. 공백으로부터 말의 자리를 찾는다. 머릿속에 메아리가 울린다. 그저 그것을 흥얼거린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시간에 따른 망각의 필연성은 도래할 죽음을 새까맣게 잊게 하지만, 잃어버린 말의 자리를 찾는 일은 기억하기를 통해 실현된다. 우리는 하기와 되기, 그 가장자리를 서성인다.
(글: 강정아)
* 박영옥, 「다른 곳에서 오는 목소리」 ,『불가능한 목소리』, 56쪽, 림보 출판사, 2021년